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농본주의 경제 정책을 실시한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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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은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농본주의 경제정책을 실시 하였습니다. 농업 생산을 높이기 위해서 다양한 노력을 전개하기도 했는데요 토지를 개간하거나 수리 시설을 확충하고 농업 기술 혁신 등에 많은 힘을 기울였습니다. 조선은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 였습니다 조선의 경제----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농본주의 경제정책 조선 초기부터 황무지를 적극 개간한 경과 조선초에 100만 결 정도에 지나지 않던 농지가 세종 때에는 160만 결로 늘어나면서 농업생산량도 크게 증가 하였습니다. 농업이 중심이된 조선시대에는 영농 기술도 크게 발전되었는데요 모내기법이 남부 지방에서 보급되면서 보리와 벼의 2모작이 이루어졌습니다. 식량을 확보하기 위한 벼농사 뿐만 아니라 면화 재배가 크게 확대되고 각종 원예 작물과 과수의 재배도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농업에 사용된 소 세종때의 조세 제도 전분 6등법 토지를 6등급으로 나누어 세율을 차등 적용 연분 9등법 풍흉의 정도에 따라서 9등급으로 나누어 세율을 차등 적용 농민에 대한 세제부담도 감소가 되었는데요 새로운 토지제도인 과전법의 성립으로 수확의 50%를 바치던 병작 반수가 금지 되고, 1결마다 최고 30두까지 받게 하도록 하였습니다. 세종 때에는 토지를 6등급으로 나누고 풍흉의 정도에 따라서 9등급으로 나누어 세율을 차등 적용하는 제도를 실시 하였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조세 부담을 고르게 하기 위하여 20년마다 토지 조사 사업을 실시하였고요 토지조사에 따라서 양안이라는 토지 대장을 작성하였습니다. 농민이 바치는 전세와 공물은 국가의 주 수입원이 되었고요 이외에 국가가 염전이나  ,  광산 ,  산림 ,  어장을 경영하여 수입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 -------------------------------------------------------- ● 조선시대의 수공업과 상업 조선시대에는 ...

중국의 종교인 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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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교와 청담 사상 중국의 종교인 도교는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기초로 하여 형성된 종교입니다. 자연과 벗하는 장자   고대 중국의 종교인 불교는 인도에서 도입된 외래종교인 반면에 도교는 순수하게 중국에서 형성된 민족종교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노자의 사상을 계승 발전 시킨 장자 인도에서 도입된 외래종교인 불교는 왕실의 후원과 귀족들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고대시대에 가장 강력한 종교교단이 되게 됩니다. 그러나 도교는 불교의 성행에 밀려서 상대적으로 위축이 되었지만 그래도 민간의 일부에서 꾸준하게 전승이 되었습니다. 초창기 도교 교단의 선구적인 역할을 한 종교로는 오두미교와 태평도가 있습니다. 오두미교와 태평도 ----초창기 도교 교단의 선구적인 역할   후한시대에 장각이 만든 태평도는 황건적의 난을 일으켰다가 실패를 하게 됩니다.   ●오두미교 초창기 도교의 일파인 오두미교는 한나라 말기에 발달한 종교교단입니다. 오두미교는 후한 말기 촉(蜀)나라에서 발생한 종교 교단인데요 천사도라고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오두미교는 이 종교를 믿는 신자가 입단하기 위해서는 5말의 쌀을 바친 것에 연유해서 생겼난 이름 입니다, 오두미교 한나라 말기에 발달한 종교교단 후한 말기 촉(蜀)나라에서 발생한 종교 교단 후한 말에 정치적 혼란 하에 처해져있던 백성들에게 종교적인 구원을 선전하였는데요 도덕적으로 선행을 하면 질병이 낫게 되고 영원히 죽지 않는 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선행을 하면 신선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민중들에게 많은 희망을 주었습니다. -------------------------------------------------------------------------------------------------------------------- ●오두미교의 특징 오두미교의 특징을 보면 오두미교에서는 병을 주술을 통해서 치료하였습니다. 오두미교의 종교 지도자는 병자에거 먼저 지난 죄를 고백하게 하였고요 주술을 통해서 치료하는 경우도...

조선시대의 천문 역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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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달력으로 칠정산과 시헌력이 있습니다. 칠정산 조선 세종 때에 이순지, 김담 등이 왕명에 따라 펴낸 역서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만든 역서 내편과 외편으로 구성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달력인 칠정산은 조선 세종 때에 이순지, 김담 등이 왕명에 따라 펴낸 역서입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달력 칠정산은 . 내편과 외편으로 되어 있는데, 중국 원나라의 역법과 명나라의 역법을 참고하여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 꾸민 것입니다 세종은 고려 시대부터 왕립 천문기상대 역할을 하던 서운관의 이름을 관상감으로 바꾸고 경복궁 경회루 북쪽에 간의대를 세워 별자리를 비롯하여 일출과 일몰, 일식과 월식, 혜성과 행성의 운행을 관찰토록 했습니다. ​ 간의대 는 조선시대의 천문대인데요 천체 관측기구인 간의(簡儀)를 올려 놓았다고 하여 간의대 라고 했습니다. 조선은 고려의 제도를 계승하여 왕립(王立) 중앙천문기상대로서 서운관을 두었고 그 관측시설로 간의대 를 설립하였습니다 ​ 서운관은 태복감·사천대·사천감·관후서 등으로 불리었습니다. 이후 1308년 고려 충선왕이 즉위하면서 처음 설치되었고요 사천감과 태사국으로 분리되고 통합되기를 반복하다 1372년 병합하여 서운관이 되게 됩니다 . 서운관과 간의대

김억의 시집 해파리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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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억의 시집 해파리의 노래 는 김억의 첫 시집이자 조선 근대문학 최초의 창작시집인데요 김억의 시집 해파리의 노래에서는 총 83편의 시를 9장으로 나누어 수록하였습니다. 시집 해파리의 노래는 김억이 쓴 서문으로 시작이 됩니다. ​ 김억이 쓴 서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서문 / 김억 해파리의 노래같은 동무가 다 같이 생(生)의 환락에 도취되는 사월의 초순 때가 되면 뼈도 없는 고기덩이밖에 안되는 내 몸에도 즐거움은 와서 한(限) 끝도 없는 넓은 바다 위에 떠놀게 됩니다. 그러나 자유롭지 못한 나의 이 몸은 물결에 따라 바람결에 따라 하염없이 떴다 잠겼다 할 뿐입니다. 볶이는 가슴의, 내 맘의 설움과 기쁨을 같은 동무들과 함께 노래하려면 나면서부터 말도 모르고 ‘라임’도 없는 이 몸은 가엾게도 내 몸을 내가 비틀며 한갓 떴다 잠겼다 하며 볶일 따름입니다. 이것이 내 노래입니다. 그러기에 내 노래는 설고도 곱습니다. ​ 시집 해파리의 노래에는 이광수가 쓴 서문도 있습니다. ​ 이광수가 쓴 서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해파리 노래에게인생에는 기쁨도 많고 슬픔도 많다. 특히 오늘날 흰 옷 입은 사람의 나라에는 여러 가지 애닯고 그립고, 구슬픈 일이 많다. 이러한 ‘세상살이’에서 흘러나오는 수 없는 탄식과 감동과 감격과 가다가는 울음과 또는 웃음과, 어떤 때에는 원망과 그런 것이 모두 우리의 시가 될 것이다. 흰 옷 입은 나라 사람의 시가 될 것이다.이천만 흰 옷 입은 사람! 결코 적은 수효가 아니다. 이 사람들의 가슴속에 뭉치고 타는 회포를 대신하여 읊조리는 것이 시인의 직책이다.우리 해파리는 이 이천만 흰 옷 입은 나라에 둥둥 떠돌며 그의 몸에 와 닿는 것을 읊었다. 그 읊은 것을 모은 것이 이 『해파리의 노래』다.해파리는 지금도 이후에도 삼천리 어두침침한 바다 위로 떠돌아다닐 것이다. 그리고는 그의 부드러운 몸이 견딜 수 없는 아픔과 설움을 한없이 읊을 것이다.어디, 해파리, 네 설움, 네 아픔이 무엇인가 보자 . 계해년 늦은 봄 흐린 날에춘원(...